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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Tip2012/01/17 13:10



(27) 나가서는 말도 못하는 집안똑똑이


지금껏 참 많은 강연과 토론회를 다녔습니다.
그런 행사 끝부분에는 항상 사회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끝으로 질문사항있으신 분 손들어주세요”

그러면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궁금한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을 꺼내곤 하죠.
그런 순간, 저는 발언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러워하기 일쑵니다.

‘말 참 잘하구나, 참 용감하구나’

그렇습니다, 저도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단 한번도 손들어 말하지 못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에이, 누가 물어보겠지’, ‘하긴 그거 모른다고 뭐 큰일나나’

그렇게 애써 저를 위로하지만 사실은

‘남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거 아닐까’, ‘내 질문이 너무 얼토당토 않는 소리면 어쩌지?’

그런 마음에 두 손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을 뿐입니다.

며칠 전 지인의 소개로 읽던 책이 있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책의 저자가 토론회를 한다지 뭡니까.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루 전날에는 용기내어 질문할 내용을 메모도 했습니다.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길 여러번. 그렇게 완성된 질문으로 출퇴근 길에 쫑알쫑알 연습도 참 많이 했습니다.
토론회 당일, 손을 들고 그 질문을 하고 있을 저를 떠올리면 바들바들 떨려오지만
이런 상상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질거라 생각하고 연습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바로 오늘이 연습의 효과를 보는 날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토론회장에 들렀습니다. 기대했던대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준비한 질문이 토론회의 맥락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다른 궁금증이 생겼지요. 그런데 어쩌죠, 새로운 궁금증에 대한 질문은 정리조차 못했는데 말이에요.
때마침 사회자가 말합니다.

“질문하실 분 안계신가요?”

너무 조용합니다. 잠시 후, 많은 분이 질문을 하시더군요.
그때 제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이렇게 궁금해 하는 내용을 묻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하게 질문할 내용을 생각하고 입속에서 중얼거리며 연습했습니다.
그 순간,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받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하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자가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그 짧은 순간 전 수백번도 더 고민했습니다.

‘다시 손을 들고 하나만 더하자고 할까? 손은 들었는데 내 목소리 못듣고 그냥 지나치면 무슨 망신이야, 아님 그냥 묻지 말까, 바보 멍청이같아.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아님 지금 사회자한테 자꾸 눈으로 사인을 보낼까? 그럼 알아채지 않을까?’

그러는 동안 이미 마지막 답변은 끝났고 사회자는 마무리 인사를 하려고 하더군요.
눈을 질끈감고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질문... 하나만 더... 하면 안...돼요?”

다들 저만 보는 거 같았고 그때부터 심장은 튀어나가 사회자랑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더니 무척 난감해하는 사회자입니다.
어렵게 얻어낸 기회,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보아 온 수많은 분들의 또박또박, 여유있는 말소리, 저도 그렇게 멋지게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제 이야기를 편안하게 다른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저...부산..에서 왔는데요..저도...”

망했습니다. 그 말 많은 제가, 그런 제 입에서 나온 소리가 전원일기 일용엄니 목소리같았다는 사실.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마치 금방이라도 으앙하고 울음 터트릴 거처럼 불안불안한 목소리 말입니다.
겨우겨우 질문을 마쳤고 멋진 답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마운 답변은 뒷전이고 별거 아닌 거로 이렇게 힘들어하는 제가 참 미웠습니다.
사람들이 그랬을 겁니다. “쟨 왜 질문하는데 울고 그래?”
아,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거든요.
뭐가 그렇게 떨리냐며 저를 이해못하겠단 눈으로 보시는 분도 계시겠죠.
저도 절 이해 못하겠어요, 대체 왜그런지. 이 울렁증은 정말 불치병인가 봅니다.
그렇게 자책하고 있자니 행사 관계자가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혹시 날 위로하려고 오는 건가? 내가 그렇게 안쓰러워 보였단 말인가?’

정말 절망스러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아, 선생님 아까 질문하신 내용말이에요.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서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런 천사같은 분도 있구나. 뭐 대단한 질문이라고 ...참 감사했습니다.
그 분을 따라 어느 지역단체 대표님과 인사를 하려는 찰나 뒷줄에 계시던 한 분이 말씀하십니다.

“혹시 최문정 씨 아니세요?”

어라, 이게 무슨일이지. 난 내 이름도 말하지 않았는데......

“작은책 잘보고 있어요”

여기서 작은책의 위력을 또다시 확인하고 맙니다.
다른 곳에서라면 감사한 마음에 웃으며 이야기도 많이 나눴을텐데 남들 앞에서 말하나 제대로 못하고 벌벌 떠는 제 모습을 작은책 독자가 지켜보고 계셨다니 창피함이 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심장박동은 회복하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은 가라앉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문앞에서서 유리문에 비치는 저를 빤히 보자니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헤쓱해졌더라구요.
실업센터 큰 유리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오던 그 분들도 사무실에 발을 들이기까지 몇 달, 몇 년을 고민했었겠지요?
그 분들도 제게 힘든 본인 사정을 털어놓기까지 속으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갈등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렵사리 구구절절한 본인의 이야기를, 생판 처음보는 그것도 쌔까맣게 어린 사람에게 꺼내놓고 얼마나 불안불안해 하셨을까요.
그런 그분들에게 “왜 진작안왔어요? 빨리오셨어야지예”, “그냥 전화만 하면 될 일을 와 이래 놔뒀어예”, “괜찮아예,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라네예”, “내일도 꼭 다시오셔야 됩니데이” 하는 너무 쉬운 말만 늘어놓은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펑크내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쩜 이럴 수 있냐며 속으로 씩씩거리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내 입장, 내 가슴의 상처부터 생각한 거 같아서 죄송한 마음만 한 움큼 더 생겼습니다.
이웃들의 아프고 기쁜 이야기들이 제게는 수천, 수만권의 책보다 더 귀한 양식이었음을 새삼 곱씹게 되는 날입니다.
다시 이웃들과 이야기 나눌 때는 이웃들의 얼굴에서 오늘의 제 모습을 발견하려 합니다.
그리고 잘왔다고, 참 잘했다고 등 한번 도닥여드려야겠습니다.
아, 저도 이 울렁증을 불치병으로 남겨두지 않을랍니다.
난치병으로 격상시켜서 언젠가는 완치로 정리해버릴 겁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힘 좀 주세요! 끝.

*지난 <활똥가일기>가 보고싶으시면 클릭해주세요^^
**(28)회까지는 2011년 12월까지 <월간 작은책>에 연재된 글이 발행될 예정입니다^^
**(29)회부터 이웃들의 따끈한 이야기로 다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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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팡게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오리날다

    화이팅~^^

    2012/01/19 13:21 [ ADDR : EDIT/ DEL : REPLY ]
  2. 최주임

    우왕^^ 첫 댓글~ 감사합니다 ^^

    2012/01/19 14:24 [ ADDR : EDIT/ DEL : REPLY ]